I.
아버지는 열여덟 살 때 더 나은 삶을 찾아 콜롬비아에서 북미로 이주했다. 형제인 우리에게 그건 추운 바깥에 오래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형편을 개선하는 방식은 부동산을 개선하는 것이었고, 우리 형제는 우리가 소유한 건물의 공사에 ‘자발적으로’ 차출되었다.
그렇게 나는 십 대 시절의 상당 부분을 울타리를 교체하고, 도랑을 파고, 바닥과 창고를 만드는 데 보냈다. 이 모든 공사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현실은 놀랄 만큼 세세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사람들이 왜 그토록 쉽게 생각이 막혀 버리는지를 설명해 준다. 자기 분야에서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인 사람조차 마찬가지다.
잠시 지하실 계단을 만든다고 해 보자. 처음에는 계단이 꽤 단순해 보인다. 큰 틀에서는 실제로 단순하다. 길고 넓은 판재 두 장(2인치×12인치×16피트)을 나란히 놓고, 디딤판 몇 장과 각 디딤판을 받칠 ㄱ자 브래킷을 양쪽에 달면 된다. 하지만 막상 만들기 시작하면 놀랄 만큼 미묘한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사실 꽤 많다는 점이다. 큰 단계만 보더라도 2×12 판재 양끝을 올바른 각도로 잘라야 한다. 그런 다음 계단을 고정할 U자 브래킷을 위층 바닥에 나사로 박고, 2×12 판재를 그 브래킷에 고정하고, 디딤판용 ㄱ자 브래킷을 붙인 뒤, 마지막으로 디딤판을 나사로 고정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위의 각 단계가 또 여러 단계로 쪼개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중 일부에는 재료와 작업의 성질, 그리고 작업자와 도구의 한계 때문에 까다로운 디테일이 숨어 있다.
처음 맞닥뜨릴 문제는 2×12 판재를 올바른 각도로 자르는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이다. 정확한 각도를 어떻게 판재에 본떠 그려야 할지 얼른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창의력을 발휘하면 본뜰 방법이 있기는 하다. 아니면 삼각법 책을 꺼내 절단 각도와 위치를 계산할 수도 있다.
계단에 알맞은 각도가 어느 정도인지도 찾아보게 될 것이다. 자를 때 보기에 그럴듯한 각도와 실제로 밟았을 때 안전하게 느껴지는 각도는 다를 수 있다. 또 2×12 판재를 비스듬히 자를 때는 원형톱에 가이드를 붙이는 편이 좋다. 절단면이 꽤 곧아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를 마치면 모든 디딤판을 똑같은 각도로 맞추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계단 옆판과 이루는 각도를 매번 똑같이 잡아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을 마련해 선을 다 그리고 나면, 곧아 보이던 판재가 사실은 그다지 곧지 않다는 사실에 낙담할 수도 있다. 목재는 갓 베어 수분이 많을 때 가공되고 이후 마르면서 뒤틀린다. 그래서 완벽하게 곧은 목재는 없다.
목재상에 다시 가서 좀 더 곧은 2×12 판재를 사 오고 선을 다시 그렸다면 이제 브래킷을 고정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를 배우게 된다. 처음에는 그어 둔 선에 맞춰 놓았는데도 나사를 박고 나면 ㄱ자 브래킷이 더 이상 똑바르지 않다. 나사가 비스듬히 들어가 브래킷을 잘못된 각도로 단단히 고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먼저 파일럿 구멍을 뚫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브래킷 위치도 1인치쯤 옮겨야 한다. 같은 구멍에서는 나사가 처음과 다른 방향으로 들어가게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침내 디딤판을 나사로 고정할 차례다. 나사가 2인치보다 길다면 다른 것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판재 위로 뾰족하게 튀어나와 발을 찌를 것이다.
계단 한 칸, 작업 한 단계마다 실제 결과를 좌우하는 디테일이 넘쳐 난다.
‘그래서 뭐?’라고 생각하며 이런 디테일을 부수적인 것이거나 계단 목공에만 해당하는 문제로 치부하기 쉽다. 실제로 그것들은 계단 목공에만 해당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디테일인 것이다. 하지만 의미 있는 디테일이 놀랄 만큼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계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실을 가까이서 직접 다루면 뜻밖의 디테일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법칙이다.
찾아보면 어디에서나 이 사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채소를 기르거나 Haskell 패키지를 처음 쓰는 것처럼 무언가를 처음 해 보다가, 성가신 걸림돌이 너무 많아 짜증 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거참, 처음부터 이렇게 간단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애를 먹었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과 부딪히고도 그것을 개인적인 실패로 착각한다.
프로그래머라면 프로그래밍에 유독 잔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모든 일에는 잔손이 많이 간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프로그래밍에서는 새로운 일을 더 자주 할 뿐이다.
이런 자잘한 디테일은 인간 중심의 영역에만 있고 물리학 자체는 단순하고 우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맞다. 물리 법칙 자체는 대체로 꽤 단순하다. 하지만 그 법칙이 현실에 나타나는 양상은 흔히 복잡하고 직관에 어긋난다.
II. 지켜보는 냄비를 끓여 보면
물이 끓는 일을 생각해 보자. 뻔하다. 물은 100°C에서 끓지 않는가?
하지만 계단도 단순해 보였다. 그러니 다시 확인해 보자.
조잡하고 눈금도 없는 수은 온도계 하나만 가지고 온도의 물리 법칙을 알아내려는 1800년대 초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라.
레인지로 가서 냄비에 물을 담고 가열하면서 물이 데워지는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실제로 해 보기를 권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냄비 안쪽 표면에 작은 기포가 잔뜩 모인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이 끓는 것인가? 물은 아직 그렇게 뜨겁지 않아서 손가락을 넣을 수도 있다. 그러다 기포가 더 빠르게 생겨나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지만, 어쩐지 도중에 도로 사그라드는 듯하다. 이어 군데군데 작은 기포 떼가 들끓기 시작하고 쉭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끓는 것인가? 어느 정도는? 하지만 정말로 끓는 모습 같지는 않다. 기포 떼는 더 커지고 더 큰 기포를 내보내기 시작한다. 마침내 기포가 수면까지 닿을 만큼 커지면서 물 표면이 요동친다. 이제야 진짜 끓는 상태에 이른 듯하다. 그러면 여기가 끓는점인가? 어딘가 이상하다. 앞서 벌어진 일들이 끓는 것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이었을까.
설상가상으로 금속 냄비 대신 유리 냄비를 썼다면 물은 더 높은 온도에서 끓었을 것이다. 잔여물을 없애려고 유리 용기를 황산으로 세척했다면, 물이 끓기 전까지 훨씬 더 가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끓기 시작하면 작은 폭발처럼 간헐적으로 끓으며 온도도 불안정하게 오르내린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물 한 방울을 서로 다른 두 액체 사이에 가둔 채 가열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로 온도를 최소 300°C까지 올릴 수 있다. 이쯤 되면 ‘물은 100°C에서 끓는다’는 말이 우스워진다.
알고 보니 ‘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처럼 놀랄 만큼 많은 디테일은 ‘인간적’이거나 ‘복잡한’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여행과 바느질에서부터 자기 마음속 경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속성이다.
III. 보이지 않는 디테일, 투명해진 디테일, 그리고 생각의 교착
또다시 ‘그래서 뭐? 세상이 복잡하다는 건 알겠지만, 부딪힐 때마다 디테일을 알아차리면 되지 굳이 따로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여길 수 있다. 비교적 단순한 일, 인류가 오랫동안 해 온 일을 한다면 흔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렵고, 가능한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일을 시도한다면 그렇지 않다.
하려는 일이 어려울수록 성공을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할 디테일도 많아진다.
이런 뜻밖의 디테일이 자신의 목표와 무관하기를 바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중 일부는 결국 핵심이 된다. 목재가 뒤틀리는 성질 때문에 절단 길이와 각도를 계산하는 것보다 실제 모양을 본뜨는 편이 더 정확하다. 액체가 과열될 수 있기 때문에 산업 공정에서 액체를 끓일 때는 충전층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이 매우 비효율적이고 예측 불가능해질 수 있다. 연료를 가득 채운 로켓과 빈 로켓의 무게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재사용 로켓은 추력을 처음의 아주 작은 비율까지 낮출 수 없다면 공중에 떠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지면에 닿는 바로 그 순간 속도가 정확히 0이 되도록 궤적을 매우 정밀하게 계획해야 한다.
중요한 디테일이라면 맞닥뜨렸을 때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디테일은 정면으로 부딪히는 중에도 저절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상황이 어수선하고 잡음투성이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브랜디 같은 증류주로 만든 ‘주정 온도계’는 온도 측정의 초창기에 널리 쓰였다. 심지어 온도계의 표준 액체 후보로도 여겨졌다. 18세기 스위스 물리학자 장앙드레 들뤽이 면밀히 연구한 뒤에야 물리학자들은 알코올 온도계의 반응이 매우 비선형적이며 농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 농도 자체도 측정하기 어렵다.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데 제대로 되지 않아 점점 더 좌절하다가, 한참 뒤에야 자신이 택한 해결 방법으로는 애초에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알맞은 디테일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사실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디테일을 발견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형제는 한 번 아버지와 함께 차고 계단을 만든 적이 있는데, 긴 판재가 올바른 각도로 놓이게 하려면 어디를 잘라야 하는지 정하는 문제가 생겼다. 한동안 그 문제와 씨름하다가, 정말 씨름이었다. 16피트짜리 판재는 무겁다. 우리는 말다툼을 시작했다. 나는 삼각법으로 각도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나 교과서를 찾아와 함께 따져 보자고 했다. 아버지는 ‘아니, 아니, 아니야. 그냥 모양을 본뜨자’며, 그렇게 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고집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계속 따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몹시 짜증이 났고 아버지도 내게 짜증이 났다. 돌이켜 보면 나는 우리가 하던 일의 근본적인 난점을 보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계단 그림을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찾아보라. 아버지에게는 그저 내가 ‘도형을 좀 그리고 각도를 계산하자’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고, 그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본 난점을 아버지도 이해했다면 그림을 그려 보자는 제안에 더 열린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는 도형과 수학만으로는 목재의 실제 모양을 반영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서로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전달했다면 합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형을 그리는 건 아마 좋은 생각이었지만 각도를 계산하는 건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그 뒤 세 시간 동안 계속 서로에게 짜증을 냈다.
중요한 디테일을 알아차리기 전에는 그것이 당연히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알아차리고 나면 곧바로 세계에 대한 직관적 모델 속에 너무 깊이 녹아들어 사실상 투명해진다. 자전거 타기나 운전을 배울 때 결정적이었던 깨달음이 기억나는가? 자신이 잘하는 일을 잘하게 만들어 준 디테일과 통찰은 어떤가?
그래서 사람은 아주 쉽게 생각이 막힌다. 지금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방식에 갇혀 버린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틀은 중요하다고 여기는 디테일로 짜인다.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중요한 디테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이미 알아차린 디테일은 너무나 당연해져, 렌즈처럼 그 너머만 볼 뿐 그 자체는 보지 못한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자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 가능성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기후변화 회의론자나 기후과학자에게 ‘무엇이 당신이 틀렸음을 납득시킬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 ‘내 편의 데이터가 전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같은 답을 듣기 쉽다. 또는 그와 비슷하게 극단적으로 강한 증거를 요구한다. ‘내 편 데이터의 디테일에서 중요한 오류가 여럿 발견되는데도 동료들이 그 문제를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면 의심하기 시작하겠다’고 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두 번째 상황이 첫 번째보다 훨씬 일어날 법하지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한다면 이 효과에 등골이 서늘해져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증거가 눈앞에 버젓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채 생각이 막혀 있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고치기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나는 내 경우에는 대부분 고쳤다.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평소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세계의 디테일을 찾아라. 산책할 때 꽃에서 뜻밖의 디테일을 발견하거나, 도로의 이음새가 그 도로의 건설 방식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살펴보라. 똑똑하지만 너무나 틀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그 사람에게 어떤 디테일이 왜 중요해 보이는지 알아내라. 일을 하면서는 세라가 바로 그 한 가지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 회의가 사실 별 성과를 내지 못했으리라는 점을 알아차려라. 무언가를 배우면서는 어떤 디테일이 실제로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는지 살펴보라.
생각이 막힌 채로 있고 싶지 않다면,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려 하라.
source: https://johnsalvatier.org/blog/2017/reality-has-a-surprising-amount-of-detail



